대한민국에서 몇 년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팀인 토트넘 핫스퍼에 대해 상세히 알아봅니다. 토트넘의 창단역사와 프리미어리그 내 입지, 그리고 토트넘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토트넘의 창단 역사
토트넘은 1882년도에 창단되었습니다. 런던 북쪽 Tottenham 지역에서 시작된 팀입니다. 토트넘 창단 시에 지역 축구팀을 묶어 프로축구팀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홋스퍼 FC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년 후 1884년에 현재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쭉 팀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린 학생들을 주축으로 창설된 토트넘은 공터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존 립셔 선생님에게 지원을 받으며 약 2.5펜스, 한국 돈으로 39원의 돈으로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885년 프로 축구팀으로 전환을 신고했습니다. 1899년에 홈구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경기장을 짓고 이전하게 되는데, 이곳이 2017년까지 운영된 화이트 하트 레인구장입니다. 현재는 같은 자리에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건설하고 이곳을 홈구장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1901년에든 서던리그에 합류하게 되고, 1908년에 현재의 프리미어리그와 같은 명성을 지닌 최초의 프로리그 '프러시안 리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토트넘은 이때부터 대형 축구 클럽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토트넘의 역사는 1960년에 가장 빛났습니다. 이때 토트넘은 당시 리그우승과 Fa컵 우승을 동시에 하는 더블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팀들 중 한 팀입니다. (토트넘 외에도 5개의 팀이 더 있습니다.) 특히나 세계 1차 대전이 있던 시기에 토트넘의 홈구장은 영국의 정부의 소유가 되어 전쟁을 위한 물자를 만드는 공장으로 이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중 홈구장이 파손되는 일도 있어, 당시 아스날의 하이버리 구장과 다른 팀들의 경기장을 이용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토트넘이 창단될 당시에 북런던에는 토트넘 한 팀만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이 울위치 지역에서 북런던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북런던 더비가 생성이 된 것입니다. 이때 당시 토트넘 회장은 반대했으나, 아스날이 일방적으로 북런던으로 이전을 감행한 것입니다. 아스날과의 북런던 더비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토트넘의 역사는 1882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입지는 다른 빅클럽에 비해 낮게 평가되는 건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내 입지
한국에서 토트넘은 이영표, 그리고 현재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팀으로 인기도가 높습니다. 물론 손흥민 선수가 이적해서 활약을 하기 전까지는 다른 빅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아스날, 리버풀)에 비해 인지도나 인기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박지성선수가 뛰었던 맨체스터 Utd 팬의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었습니다. 맨체스터 Utd를 제외한 다른 팀들도 토트넘보다는 인기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손흥민 선수가 이적을 하고, 토트넘에서 활약을 하게 되면서 토트넘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물론 손흥민을 보기 위해 토트넘 경기를 챙겨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토트넘을 응원하는 팬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현지 영국 내에서 토트넘의 입지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매번 UEPA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 리그에서의 중위권 성적으로 어느 정도의 입지만을 다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같은 북런던에 위치한 아스날이 과거 꾸준히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고, 리그에서도 4위 이상에 랭크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러나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 시절, 헤리 케인과 손흥민, 에렉 센, 델리 알리를 주축으로 한 공격라인을 중점으로 재미있게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토트넘의 영국 내 입지도 올라가게 됩니다. 먼저 헤리 케인 선수의 경우 영국 자국리그 선수로, 영국 내에서도 가장 훌륭한 선수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입니다. 또한 UEPA 챔피언스리그도 4년 연속 진출하게 되는 등 매해 기록적인 역사를 써내려 왔습니다. 토트넘은 그동안은 1882년에 출범하여 전통은 가지고 있으나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마땅한 실적(우승컵)이 없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2022-23 리그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FA컵에서 탈락하며 또다시 무관 토트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토트넘이 빅클럽이 아니라는 의견의 주된 이유는 트로피가 없다는 것입니다. 토트넘의 최근 트로피는 아우디컵인데, 이 마저도 다른 팀들에서 토트넘의 무관을 놀릴 때 사용하는 트로피입니다.
유대인과 토트넘의 관계
토트넘이 연고하고 있는 지역은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토트넘 팬들 중에 유대인들도 많습니다. 스퍼스 중 유대인 서포터는 '이드'라고 불리는데, 하시디즘을 따르는 유대인들이 많이 밀집해 있어 종종 반유대주의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토트넘 서포터스는 이스라엘 국기를 응원 기를 사용하거나 유대인들을 통한 응원구호가 생기는 등 토트넘의 정체성에도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대인들만 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일반 토트넘 팬들도 현재까지 이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토트넘의 구단주도 유대인입니다. 또한 토트넘의 회장 역시 유대인과 관련한 유대인계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토트넘과 유대인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수들도 우리 유대교 믿어야 하냐는 농담을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토트넘의 유대인에 가장 적대감을 드러내는 팀은 같은 런던에 연고를 둔 첼시 FC였습니다. 첼시는 런던 내에서도 부유계층이 주를 이루었기에 이와 연관되는 인종차별적 적대감이라고 보입니다. 인종차별적 응원가도 존재했던 첼시는 2007-08 시즌 유대인감독이 팀을 맡게 되고, 또 그 이후 유대인 선수의 이적으로 역으로 토트넘에게 비웃음을 사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토트넘 구단과 유대인 사이에 밀접한 관계는 없으며, 토트넘은 유대인 외에도 다양한 인종과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토트넘이 유대인 구단이라는 뜻은 아니며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로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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